개양귀비 꽃을 보러 갔다
아편이 되지도 못하는 씨방을 감싸고
꽃은 뜨거운 핏빛이다
한사코 핀다는 것은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비명인 줄 아니까
저 빨강을 고요히 바라보기로 한다
맵고 짜고 질긴 것들을 탐방하며
나를 탕진하던 날들을
개양귀비 꽃잎에 구구히 빗댄다
길가의 간판을 밤새도록 읽으며 베꼈던 이름들
개양귀비 개다래 개미지옥 개살구 개밥바라기
그리고 개새끼
저것들을 부르다 놓쳐버린 길들이 뒤엉켜
밤마다 가위에 눌리는데
울기 좋은 곳도, 울기 좋은 때도
남들이 모두 차지했으므로
나는 그냥 팥죽 솥처럼 끓기로 한다
마침내 슬픔이 따뜻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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