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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참 좋은-

할머니의 봄날 / 장철문

 

 

 

 

 

 

 

 

 

 

 

 

 

 

 

 

    볕 아깝다

    아이고야 고마운 이 볕 아깝다 하시던 말씀

    이제사 조금은 알겠네

    그 귀영탱이나마 조금은 엿보겠네

    없는 가을고추도 내다 널고 싶어하시던

    오줌장군 이고 가

    밭 가생이 호박 몇구덩이 묻으시고

    고랫째 이고 가 정구지 밭에 뿌리시고

    그예는

    마당에 노는 닭들 몰아 가두시고

    문이란 문은 다 열고 먹감나무 장롱도

    오동나무 반닫이도 다 열어젖히시고

    옷이란 옷은 마루에

    나무널에 뽕나무 가지에 즐비하게 내다 너시고

    묵은 빨래 치덕치덕 치대 빨랫줄에 너시고

    그예는

    가마솥에 물 절절 끓여

    코흘리게 손주놈들 쥐어박으며 끌어다가

    까마귀가 아재, 아재! 하고 덤빈다고

    시커먼 손들 탁탁 때려가며

    비트는 등짝 퍽퍽 쳐대며

    겨드랑이 민둥머리 사타구니 옆구리 쇠때 다 벗기시고

    저물녘 쇠죽솥에 불 넣으시던 당신

    당신의 봄볕이 여기 절 마당에 내렸네

    당신 산소에서 내려다보이는 기슭에는

    가을에 흘린 비닐 쪼가리들

    지줏대를 태우는 연기 길게 오르고

    이따금 괭잇날에 돌멩이 부딪는 소리 들리겠네

    당신의 아까운 봄볕이

    여기 절 마당에 내려 저 혼자 마르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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