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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참 좋은-

입추 지나고 / 배명식

 

 

 

배롱나무가 입술 진한 여인처럼

사열대처럼 늘어선 경주 가는 산동 길

입추 지나고 더위는 새 옷 입을 듯

바람에 꺾여 새벽 창을 닫게 했다

 

길게 늘여보는 유년의 고무줄처럼

지상의 삶은 저 끝에서 더욱 당기어 오고

하늘로 오르는 사다리 같은 나의 기도는

산에 걸린 운무 되어 내 곁을 떠났다

 

어디쯤 가서 서 있으면

내가 기다리는 자의 말씀을 듣고

그 넓은 공중의 터에서 노래 부를까

그날까지 나는 더욱 거룩해질까

 

사랑이여, 마른 풀숲에 앉아

가을 부르는 비 기다리는 메뚜기같이 작아지거나

눈부신 햇살 속 한 점 바람으로 흔들리는 나뭇잎 같은 나를

크고 강한 손으로 붙잡아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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