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을날
지리산 등성 어디쯤서 반달곰과 딱 눈이 맞는다면
마늘 몇 쪽 갖고 동굴 속으로 들어가
녀석과 살림 차려야지.
그 계곡 어디쯤서 날다람쥐 한 마리 만난다면
쳇바퀴 굴리듯 한세상 돌고 돌아야지.
가을 햇볕에 천천히 가슴을 데우다가
마침내 비등점에 오르면 붉게 붉게 타올라야지.
붉은 마음이 식어 하얀 재로 남으면
팔랑거리며 눈이 되어 내려야지.
사람도 한 그루 나무인 그 산에서
네 편 내 편도 없이 한세상 환하게 살아야지.
어느 날 또 내가 마침내 죽음과 눈이 딱 맞는다면
슬로슬로우 퀴퀵 춤을 춰야지.
반달곰 가슴을 팍팍 치면서 나 없어도 잘 살아 얘기해야지
도토리 점심을 주면서 다람쥐한테도 안녕 해야지.
사는 일이 슬로슬로우 퀴퀵이라고
계곡물에게도 알려줘야지.
모두들, 서두를 것 없이 숨을 몰아쉬면서
슬로슬로우 퀴퀵.
'좋은, 참 좋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밤하늘에 쓴다 / 유안진 (0) | 2021.11.13 |
---|---|
누구나 좋아하는 사람 / 김경국 (0) | 2021.11.13 |
김밥의 시니피앙 / 정일근 (0) | 2021.11.13 |
죽어도 사람을 / 황경신 (0) | 2021.11.13 |
아침 / 원태연 (0) | 2021.1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