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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참 좋은-

철로변 집 / 김상미

 

기차가 지나가네요,

내 애인은 철로변 집에 살아요.

에드워드 호퍼가 그린 집과 똑같은 집, 그 집에서 살아요,

우리는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사랑을 나누어요,

기차 바퀴 소리에 놀라 들썩이는

야생 민들레 꽃밭 사이로 날아다니는

자디잔 흰구름은 정말 황홀해요,

나는 황홀한 게 좋아요,

황홀할 땐 어떤 나쁜 생각도 깃들지 못하거든요,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민들레 씨의 아름다움은

내 애인만큼이나 정말 착해요,

매시간 지나가는 기차처럼 우리 삶에는 머묾보다 떠남이 더 많고,

매번 불타는 그 떠남 속에서 나는 늙어가지만,

나는 내 위로 지나가는 기차 소리가 좋아요,

마음이 저리도록 나를 꼭 껴안고

오로지 자신에게만 푹 파묻히게 하는 내 애인처럼,

삶은 격렬하고 또한 한없이 적막하지만,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인생은 짧아지고

숨 막히는 그 사랑 때문에 우리는 서서히 세상에서 멀어져 가지만,

매번 다시 오고 가는 기차 소리는 정말 황홀해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두 줄로 끝없이 이어진 철로,

내 애인은 철로변 집에 살아요,

내 키보다 큰 야생 민들레꽃들이

서로를 덮쳐 내뿜는 쓰라린 망각 속에

황홀하게 피고 지는,

                    - 시집.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문학동네 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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