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경아 산천은 지금 한창 푸르름이다
淸道에 내려 소싸움 터를 혼자 어슬렁거리다
묻고 물어 적천사 찾아 가는 길
수도 없이 기차를 잡아먹는
뱀굴 같은 터널을 옆구리에 끼고,
사천왕의 입술보다 붉은 표지판을 따라가면
직각이었다
뱀굴에서 설익어 나온 기차가 악을 쓰며 벌겋게 벗겨져 가는
건널목에 서서 우리 삶이 빛나는 건
누구에겐가 제대로 먹혔을 때가 아닐까 생각했다
직각의 모퉁이에 기댄 어깨야
언젠가는 돌고 돌아 둥그런 마을도 만들 테지만
산다는 것의 배려란 가령 이런 것이리
내 몸은 불볕에 타도 옆 사람 타지 않게
양산을 바쳐주듯
내 몸을 그림자에게 주고
훌훌히 떠나는 모습을, 이 땅에 누가 다시 복사하는가
뜨겁다 저 이발소 그늘 밑에 모여 노는 노인들의
쭈글쭈글한 껍질이 몸에서 제일로 멀 듯, 헐렁한 껍질은 아득타
질기고 질긴 가죽에 대한 예의 같은
예리한 면도 솜씨와 땀과 피와 눈물
맨 나중엔 다 방울의 것인, 방울 속을 들켜서 살아간다
우린 모두 들켜야 산다
다음 세상을 기약하는 모퉁이의 지혜와
땡볕을 지탱해 주던 그림자의 서슬에 기대어
어느 각도에 서건
마음 편편한 자리 한 곳을 버섯처럼 돌고 돌 수 있다면
물 그친 적천사 계곡을 따라
푸른 산 빛을 조금만 들추면
비로소 생의 발원을 다시 잡을 것 같다, 이슬
수경아 우리는 서로를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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