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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참 좋은-

부위별로 팔아요 / 황희순

 

나를 사가세요.

부위별로 팝니다.

흐벅지진 않지만 오십여 년 숙성된 살이 말랑말랑할 거예요.

세상을 휘젓고 다닌 팔과 다리는 좀 싸게 팔아요.

엉덩이에 난 바람구멍은 살짝 도려내고 드세요.

가슴에 영영 메울 수 없는 구멍을 만들지도 몰라요.

젖가슴과 허벅지는 할인되지 않아요.

입술은 혀를 끼워 팝니다.

혀 없는 입술은 좀 싱거울 테니까요.

갈비뼈 사이엔 아팠던 흔적이 사리처럼 끼어있을 거예요.

약이라 생각하고 꼭꼭 씹어 드세요.

간장은 다 녹아 못쓰게 됐을 거예요.

진창도 풍덩풍덩 밟았던 발과 아무나 덥석덥석 잡았던 손이 문제군요.

아랫도리를 통째로 사가면 손은 덤으로 드릴게요.

잠 안 오는 밤 혹시 위안이 될지 모르니까요.

발은 팔지 않을래요. 갈 곳이 있거든요.

꼭 한번은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요.

껍질은 살살 벗기세요.

입맛에 맞게 회를 뜨든지 탄력이 없다 싶으면 소금구이해 드세요.

뼈는 잘 고아 조금씩 마셔요.

뼛속 깊이 사무쳤던 일 많아 독이 있을지 몰라요.

아, 당신이군요. 어떤 부위를 잘라드릴까요.

                        - 시집 『미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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