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파트에 갔다가 그 노인을 보았습니다.
팔순도 넘었다는 할아버지였는데,
두어 해 전부터 치매를 앓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노인은 가동과 나동 사이 아스팔트 마당을 골똘하게 걷고 있었습니다.
고개 숙이고 무릎 굽히고 뒷짐 지고 하염없이 왕복을 계속하였습니다.
발끝에 힘을 주는 듯 잘근잘근 밟아나갔습니다 밟아나갔습니다 밟아나갔습니다 아,
보리밟기였습니다.
마침내 저 힘 센 보리가 무수히,
겨울 지난 보릿골이 꿈틀꿈틀 일어나더니
꿈틀꿈틀 길게 이어졌습니다.
유월 참 좋은 바람,
그런 풀비린내의 초록의 길을
고집불통의 한 사내가 오래 가고 있었습니다.
'좋은, 참 좋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긴 봄날 / 허영자 (0) | 2022.06.04 |
---|---|
젖이라는 이름의 좆 / 김민정 (0) | 2022.06.03 |
감문요양원 / 문태준 (0) | 2022.06.02 |
하나님 놀다가세요 / 신현정 (0) | 2022.06.01 |
밤꽃 향기 / 김광규 (0) | 2022.06.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