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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참 좋은-

누가 더 박복한고 / 조정

 

성님 쩌번창께 우리 집 모낸 날 생각나요?

성님이 새비 넣고 지진 갈치 맛나다고 허신 날 말이요

그날 샛것이 마땅찬해서 그바게 저재로 갈치 사러 갔는디

역리 들어가는 삼거리서 개실리 아짐 뵈앗소

건강허시든가?

예 건강허십디다 아따 예순이 넘은 연센디

보는 사램 가심이 서늘허게 곱드만 낯빛 눈빛이 뻣신 데가 없어라우

손 붙잡고 안부 물으시는 조근조근 음성이 어째 그라고 펜안허까

샛것 내갈 일 그방께 불나게 돌아서 온디

무단히 서글픈 생각이 들드랑께요

저리 이삔 각시가 스물에 혼자 되야가꼬

으찌케 손 안 타고 지 감장 허고 살았으꼬

빽다구 있는 반가의 딸이고 시집이 원청 짱짱하니

딱 찌고 상께 누가 건들지 못 허재

나도 저참에 뵈얐는디 주름 잔 생겠어도 고우시등만

각시 때는 가물가물하니 순한 눈에

귓밥에서 턱으로 내래가는 얼굴 태가 눈이 부셌재

어느 기생이 와서 맹함 내밀었다가는 뺨 맞고 갈 자태라고 했다네

이목구비가 빤듯해도 싱겁게 생긴 사람이 흔히 있는디

그 아짐은 귄이 딱 쪘등가안 예팬네 눈에도 홀릴 사람두고

그리 바브게 가신 냥반은 억울했을 것이네

아짐이 박복한 거시까

죽은 서방님이 박복한 거시까 성님 생각은 어짜요?

자네는 어짱가 나는 일찍 죽은 사램이 더 박복하다고 보네

죽어불먼 앙꿋도 아니여

더우니 더운 줄을 앙가 추니 춘 줄을 앙가 일이 되고

속이 상코 그래도 나는 사는 것이 좋네

      - 시집 <그라시재라> 이소노미아. 2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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