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좋은, 참 좋은-

통영 / 김사인

 

 

 

설거지를 마치고

어린 섬들을 안고 어둑하게 돌아앉습니다.

어둠이 하나씩 젖을 물립니다.

저녁비 호젓한 서호시장

김밥 좌판을 거두어 인 너우니댁이

도구통같이 튼실한 허리로 끙차, 일어서자

미륵산 비알 올망졸망 누워 계시던 먼촌 처가 할매 할배들께서도

억세고 정겨운 통영 말로 봄장마를 고시랑고시랑 나무라시며

흰 뼈들 다시 접어

끙, 돌아눕는 저녁입니다.

저로 말씀드리면, 이래 뵈도

충청도 보은극장 앞에서 한때는 놀던 몸

허리에 걸리는 저기압대에 홀려서

앳된 보슬비 업고 걸려 민주지산 덕유산 지나 지리산 끼고 돌아

진양 선청 진주 남강 훌쩍 건너 단숨에

통영 충렬사까지 들이닥친 속없는 건달입네다만,

어진 막내처제가 있어

형부! 하고 쫓아나올 것 같은 명절골 따뜻한 골목입니다.

동백도 벚꽃도 이젠 지겹고

몸 안쪽 어디선가 씨릉씨릉

여치가 하나 자꾸만 우는 저녁 바다입니다.

- 김사인,『어린 당나귀 곁에서』(창비, 2015) -

 

'좋은, 참 좋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운주사 / 함민복  (0) 2022.08.16
통영 여자 / 김남극  (0) 2022.08.16
통영 / 곽효환  (0) 2022.08.16
운주에 오르다  (0) 2022.08.16
손님 구함 / 이권  (0) 2022.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