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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참 좋은-

가문의 역사 / 황명자

 

 

 

 

 

 

 

 

 

 

   

 

 

 

 

 

   그곳에서 청춘을 보냈고 벼를 찧듯

   사랑을 나눴겠지만

   부질없는 일이란 듯 썩은 살처럼 내려앉은 일생

 

   물레방아는 이제 뼈대만 남았고

   물레바퀴를 일으키던 못의 물도

   늙은 여자의 자궁 속처럼 말라서

   우묵한 웅덩이만 덜렁 남겨 놓았다

 

   나뭇가지 끝에 앉았다가 포르르 날아가는 새는

   언제나 장전 중인 총처럼 날아갈 준비가 돼 있지만

   한 줌 재가 되는 데에는 예고도 없는 가문의 역사,

   마른 못이 없었더라면 잊히고 말았을 이곳은

   윗대가 살붙이고 살던 곳이라고 누누이 알려줘 봤자

   이정표처럼 남은 마른 못이 아니었다면

   지나치고 말았을 폐가 옆엔

   마른 못만 증인처럼 덤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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