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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참 좋은-

모란시장 / 나종영

 

 

 

 

 

 

 

 

 

 

 

 

 

 

지하철 8호선 모란역에 내리면

모란꽃 한 송이 간 곳이 없고

개고기로 소문난 성남 모란시장이 있다

왜 그곳에 모란이라는 예쁜 이름이 붙여졌는지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모란시장

홍화씨 장수와 살구씨기름 파는 김씨가

자리싸움으로 핏대를 세우고

살가죽을 벌겋게 그을려 죽은 개들이

두 눈을 뜬 채 일렬횡대로 누워 폭음에 지쳐

걸어가는 사람들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

게릴라식 소나기가 쏟아지는 8월

지하철 8호선을 타고 모란역에 가면

모란꽃 이파리 시든 흔적조차 없고

오늘 하루도 무사히 살아있는 사람들이

직립의 둥그런 몸뚱아리를 끌고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

죽은 것과 살아있는 것이 뒤섞여

검은 강물로 흘러 들어가는 모란시장에 가서

모란꽃 있는 곳을 물어보면

납빛 손가락 가리키는 끝에

죽은 짐승의 시간이 무더기로 실려가고

홍화씨 한 되 살구기름 한 병 흥정하는 목소리가

개 짖는 소리에 묻혀버리는 천변 장터 마당

발 디딜 틈도 없는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땅바닥을 기어가는 앉은뱅이 손수레

눈을 씻고 봐도 모란꽃은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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