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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참 좋은-

떡국 한 그릇 / 박남준

 

 

 

 

 

 

 

  

 

 

 

 

 

 





  섣달 그믐
  어머니의 한숨처럼 눈발은 그치지 않고
  대목장(명절 장날)이 섰다는 면소재지로 어머니는
  돈 몇 푼 쥐어들고(가지고) 집을 나서셨다
  사고 싶은 것이야 많았겠지요.

  가슴 아팠겠지요
  섣달 그믐 대목장날
  푸줏간(식육점)도 큰 상점(마트)도 먼 발치로(멀리서)

  구경하고 사과며 동태 둬(두) 마리 대목장을 봐오시네
  집에 다들 있는 것인디 돈 들일 것 있느냐고
  못난 아들 눈치보며 두부전, 명태전을 부치신다
  큰 형이 내려오면 맛 보이신다고
  땅 속에 묻어뒀던 감을 내어 오시고
  밤도 내어 오신다. 배도 내어 오신다
  형님의 방에는 뜨끈뜨끈 불이 지펴지고
  이불 호청도 빨아서 곱게 풀을 멕이셨다
  이번 설에는 내려 오것제
  토방 앞 처마끝에 불을 걸어 밝히시고
  오는 잠 쫓으시며 떡대를 곱게 써신다
  늬(너의) 형은 떡국을 참 잘 먹었어야
  지나는 바람소리
  개 짖는 소리에 가는 귀 세우시며
  게 누구여, 아범이냐
  못난 것 같으니라고
  에미가 언제 돈보따리 싸들고 오길 바랬었나
  일년에 몇 번 있는 것도 아니고
  설날에 다들 모여 떡국이나 한 그릇 하자고 했더니
  새끼들허고 떡국이나 해먹고 있는지
  밥상 한편에 식어가는 떡국 한 그릇
  어머니는 설날 아침 떡국을 뜨다 목이 메이신다
  목이 메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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