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시인이었다
직설적인 시인이었다
백석보다 향토적이고 정지용보다 활유적이었다
행위에 가장 적절한 언어를 장치하고
오장육부를 도려내 굵은 소금을 뿌리고 바늘로 찔렀다
安東孫家 문중에 연애결혼은 내가 처음이었으니
이 일은 벼락을 칠 일이기도 했지만
나를 키운 구 할은 어머니의 욕이었다
그 아름다운 얼굴에 독설의 항아리는 어디에 숨겨뒀을까
언니는 이렇게 말한다
ㅡ팔 남매로 자라면서 나는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욕이다, 라고 하지만
이건 우리 마을 어귀에 서있는 당나무에
맹세코 거짓말이 아니다
ㅡ사당패같이 돌아 다니는 년
ㅡ머리 피도 안 마른 것이 머슴아 만나는 년
ㅡ쌔가 만발이나 빠질 년
ㅡ주딩이가 열 닷 발이나 나온 년
ㅡ조둥이가 염포창날 같은 년
ㅡ갈롱 부리다 얼어 죽을 년
ㅡ지 에미 잡아먹을 년
ㅡ엄발이 돋을 데로 돋은 년
ㅡ어른이 나무랄 때 한 마디도 안 지고 아바리 총총 하는 년
ㅡ제 어미 알기로 발가락새 때만도 안 여기는 년
ㅡ양탈비탈 둘러대고 돌아다니는 년
이런 년, 나를 두고 어머니는
고렇게 사람 말 안 들으면 눈에 밍태 껍데기 붙이고
영남루 다리 밑에 있는 너거 엄마한테 데려다 줄거라고
ㅡ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니 닮은 딸 하나 낳으라고
축원하고 또 축원하셨다
어머니, 수 년을 산문産門 닫고 사시다가
새삼스런 마흔에 나를 낳고 한풀이란 한풀이는 다 하셨네
달도 없는 그믐밤, 대숲이 으스스 흔들리던 밤,
갈가지 자갈 던지는 밤, 밤똥을 눌 때마다 엄마는 한 겨울에도
속옷 바람으로 따라와 앉아 있다가
닭장 앞에 데려가서 절 시키고 말 시켰다
ㅡ달구님요 달구새끼님요 닭이 밤똥 누지 사람이 밤똥 누능교
인심 좋은 달구님요 우리 아, 밤똥 가져 가이소
누가 죽여도 모를 캄캄한 밤 이런 날이 잦았지만
그때 엄마는 한 마디도 욕하지 않았다
나는 정말 명태 껍데기를 붙인 엄마가
다리 밑에 살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 어느 날 몸살로 낮잠 자고 있을 때 내 이마를 짚으며
ㅡ우찌하꼬, 이래 열이 펄펄나서…맨날 지엄마를
다리 밑에 있다 했더니 참말로 여기고 쯔쯔…
나는 다 들었지 다 듣고 말았지
참말로 좋았다 할머니 같은 우리엄마, 펄펄 열이나도 좋았다
어머니의 축원은 영험이 없었다
결국 나는 아들만 둘 낳았다
단 한 번도 나는 두 아들 앞에 직설적이지 못했다
정말로 지랄할까봐 못했고
정말로 미칠까봐 못했고
혀가 빠질까봐 못했고
남사당패가 될까봐 못했고
말대로 될까봐 못했고, 못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 욕을 주시면서
내가 건너지 않아야 할 강을 보여 주셨고
나에게 마르지 않는 눈물샘을 주셨고
어머니의 우량한 시 종자를 주셨다.
- 『시평』 2007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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