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파트 바로 위층엔
신혼부부가 세 들어 삽니다
원양어선을 타고 결혼식 다음날 떠난 신랑을
기다리는 그녀는 매일 종이학을 날립니다
한두 마리 날아 오르다가 수십 마리가
우리 집 베란다에 떨어져 죽습니다
그중 몇 마리는 아직 허공을 날고 있습니다
날개 없는 학을 무엇이 날려주는지 모른 채
나도 마주 손 흔들어 줍니다
어느덧 그녀의 하늘에서 나는 흔들립니다
종이학이 날아올 때마다 덜컹대는 창문,
새로 돋는 아이비 덩쿨손도 흔들립니다
허물린 담장 위엔 이승의 보이지 않는
새파란 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매캐한 하늘 속 홀로 있어도
그리움 깊으면 흔들린다는 사실이 황홀해져
또다시 흔들립니다
불현듯 그대에게 날려 보낸 학 한 마리는
기다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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