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연이 보풀처럼 엉켜 잘 끊어지지 않는 골목,
논노패션 여자는 동대문에서 묻혀 온
졸린 눈꺼풀들 탈탈 털어 건다
피곤도 액세서리처럼 주저리주저리 걸린다
정희네 실밥 터진 옆구리 수십 번을 누볐고
적금통장이 털린 박 양은 잘못 물린 지퍼에
살갗을 뜯겼다 윤희 할머니는 쌀 두 가마에
황톳길 너머로 시집을 왔고
진안 댁은 흉년을 견디다 못한 오라비 손에
이끌려 재취가 됐다는,
박리지만 환불이 안 되는 논노패션 골목
너무 늦게 생(生)의 안감을 뜯어내는,
논노패션 여자들은 유행을 쫓아가지 못한다
저녁이 멍 투성이처럼 흘러내리는 골목 정희네
환불이라도 받아 낼 요량인지
이를 악물고 집을 나온다
개도 달도 따라붙지 않는 한밤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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