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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참 좋은-

만장(輓章) / 배영

 

 

 

 

 

 

 

 

 

 

 

 

 

 

 

 

 

 

 

 

 

 

 


  백장의 천이 있다고  다 만장이 될 순 없다

  한 죽음을 적셔 허공을 펄럭일 때

  산발한 채 흔들리며 혼을 어루만질 때

  천은 비로소 한 개의 만장이 된다

  살아있는 바람으로 죽음을 견인해 간다

 

  텅 비어있는 뼈대의 뒤란을

  집집마다 내력처럼 두고 있던 시절

  마을에 사람이 죽으면 듬성듬성 푸른 대나무를

  베어갔다   대밭엔 늘 장례의 일정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죽은 자를 위해 층층이 관을 짜고 있었다

 

  살아있는 대나무가 한 일생을 매달고

  푸른 숨 죽이며 죽은 사람을 끌고 갔다

  꽃들이 산을 오르는 철에도

  단풍들이 산을 내려오던 계절에도

  바람의 문장으로 마을을 벗어났다

 

  그때

  죽은 바람소리를 듣고 싶다면

  죽은 대나무 곁에 서 있어 보라

  죽고 나면 바람의 귀도 어두워져

  더 큰 소리로 운다

 

  벽처럼 서서 싸늘하게

  칸칸마다 관을 지닌 채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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