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장의 천이 있다고 다 만장이 될 순 없다
한 죽음을 적셔 허공을 펄럭일 때
산발한 채 흔들리며 혼을 어루만질 때
천은 비로소 한 개의 만장이 된다
살아있는 바람으로 죽음을 견인해 간다
텅 비어있는 뼈대의 뒤란을
집집마다 내력처럼 두고 있던 시절
마을에 사람이 죽으면 듬성듬성 푸른 대나무를
베어갔다 대밭엔 늘 장례의 일정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죽은 자를 위해 층층이 관을 짜고 있었다
살아있는 대나무가 한 일생을 매달고
푸른 숨 죽이며 죽은 사람을 끌고 갔다
꽃들이 산을 오르는 철에도
단풍들이 산을 내려오던 계절에도
바람의 문장으로 마을을 벗어났다
그때
죽은 바람소리를 듣고 싶다면
죽은 대나무 곁에 서 있어 보라
죽고 나면 바람의 귀도 어두워져
더 큰 소리로 운다
벽처럼 서서 싸늘하게
칸칸마다 관을 지닌 채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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