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참 맛있게 끓여주시던 어머니
군에서 수술을 받았을 때 통합병원까지
들고 오신 잣죽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당신을 위해 죽 냄비 앞에 섭니다
작고 볼품없는 나무주걱을 잡으며
닳아서 둥그레진 모서리
거스스름하게 착색된 세월의 물 때
불을 세게 키우지도 못한 채
조금만 태만하면 금세 늘어붙는 죽
뜨거운 열기 앞에 서서 자리를 뜨지 못한 채
쉼없이 저어야 하는 죽
어머니는 그렇게 한평생 남편과 자식 셋을
온몸으로 보살핀 겁니다
죽 냄비가 잠시 뿌옇게 흐려지고
칠칠치 못하게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야할 죽에
짭쪼름한 물 한 방울 떨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길어만 가는 어머니의 부재
늘 앉으시던 자리에
세월이 먼지처럼 소복합니다
'좋은, 참 좋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집으로 가는 길 / 홍해리 (0) | 2025.01.05 |
---|---|
동피랑, 나비 마을 / 심강우 (0) | 2025.01.05 |
이별 / 최금녀 (0) | 2025.01.04 |
풍장風葬 / 진영대 (0) | 2025.01.04 |
씨앗 호떡 / 이 숨 (0) | 2025.0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