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장 부인은요,
몇십 년 시집살이 끝에 딱 한번
일을 치고 말았는데요. 치매에 걸려 혼자 사는
친정아버지를 집에 모셔왔다가 시어머니에게
된통 당했다지요. 그런데도 역성 한번 들어주지 않고
침묵하는 남편의 낯짝이 순간 철판처럼 여겨졌다네요.
온갖 정내미가 다 떨어진 그날로
집을 나가 버렸는데요.
딸네 아들네 사방 대소가들 다 찾아보아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지요. 이장 혼자 비닐하우스 짓는데
저쪽 끝에서 아내가 잡아 주던 비닐을 혼자 씌우자니
바람에 날리고 날리길 수차례,
끓어오르는 부아에 쐬주병을 나발 불었겠지요.
아무렴 혼자 농사 못 짓지요. 그러던 차
서울의 먼 친척한테서 아내 소식이 날아왔다네요.
그 길로 트럭을 몰고 서울의 한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는 아내를 데리러 갔는데 이거야 원,
머리채를 다 뽑아 버린다 해도 따라가지 않겠다는 거예요.
코만 빠지고 집에 돌아와 누워 버렸네요.
쯧쯧 혀를 찬 동네 사람들 스물일곱 가호가 관광차를 불러
타고 올라가선, 그중 대표어른 한 분이 무릎 꿇고 빌어서
겨우겨우 이장 부인을 모셔왔더랍니다
아무렴 황후처럼 모셔왔지요.
그 후로 우리 동네에선 부부 사이의 침묵은
금이 아니라 금 가는 소리라고 한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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