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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참 좋은-

야생딸기 / 함명춘

 

 

 

댐 수문이 열리기 전에

강 한가운데 있는 섬을 갔다 오면 되었다

소년과 친구들은 타이어에서 빼 온 튜브에 매달렸다

섬은 예상대로 야생딸기가 지천이었다

친구들은 허겁지겁 야생딸기를 입에 넣었지만

소년은 비닐봉지에 야생딸기를 조심조심 채워 넣었다

 

한 봉지 더 담는 것이 화근이었다

댐 수문이 열렸고 강물이 그들이 서 있는 곳까지 밀려들었다

서둘러 그들은 튜브에 매달려 헤엄쳐 갔다

어디선가 튜브의 바람이 새고 있었다

친구들은 수영이 서툰 소년을 두고 저만치 앞찔러 가고 있었다

어른들을 불러올 테니 튜브를 꼭 붙들고 있으라고 했다

야생딸기는 그냥 버리라고 했다

 

소년은 야생딸기를 단 한 개도 버릴 수 없었다

점점 소년은 또 하나의 고립된 섬이 되고 있었다

다행이 그 섬엔 소년만이 있는 게 아니었다

하나같이 눈망울이 말똥말똥한 야생딸기들이 있었다

그중엔 눈물이 맺혀 있거나 눈물을 흘리는 눈망울도 있었다

한 번도 자신에게 눈을 땐 적 없던 엄마의 눈망울 같았다

 

튜브는 완전히 바람이 빠져 무용지물이 되어 있었다

서툰 솜씨였지만 소년은 이 악물고 헤엄쳐 갔다

절대로 한쪽 손에 들려 있는 야생딸기는 놓지 않았다

얼마 못 가 힘이 빠진 소년은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소년의 손목을 잡고 물 위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소년은 강가에 반듯하게 눕혀져 있었다

눈을 떠보니 손엔 야생딸기가 고스란히 쥐어져 있었다

야생딸기는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열매였다

오늘은 엄마의 첫 기일이었다

소년은 엄마의 제사상 위에 꼭 야생딸기를 올려놓고 싶었다

 

문득 자신을 살려주었던 은인이 떠올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인기척조차 없었다

손목엔 아직도 그이 온기가 손자국처럼 남아 있었다

일 년 전 돌아가신 엄마가 살아오신 것 같았다

소년은 자꾸만 주위를 둘러보았다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

 

구멍 난 튜브처럼 

소년의 몸 어딘가에서 눈물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토닥토닥, 지나는 바람인지 아니면 햇볕인지

소년의 등을 가만히 두드려 주고 있엇다

저만치서 친구들이 어른들을 데리고 뛰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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