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페이지가 건성 넘어가고 있다
줄거리 건너뛰며 대강대강 읽는 날 늘어간다
다 늦은 저녁 먹다 남은 된장찌개 다시 데워
아이와 먹는 중이라며 옛 애인에게서 문자가 왔다
한 시절 콧날 우뚝했던 그녀 무럭무럭 늙고 있구나
낮에 입은 여자를 벗고 어머니로 갈아입은 그녀가
주방과 거실 오가며 내는 발소리 환하게 보인다
창밖 공원 가지 열고 나와 허공의 살갗
살짝 데우고 있는 우아하게 교만한 꽃봉오리들
하얀 치마 속으로 공기 입자들
입질하는 치어들처럼 옴질 옴질, 파랗게 몰려들고 있다
- 이재무, 『슬픔에게 무릎을 꿇다』(실천문학사, 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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