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 편 순산하려고 온몸 비틀다가
깜박 잊어 삶던 빨래를 까맣게 태워버렸네요
남편의 속옷 세 벌과 수건 다섯 장을
내 시 한 편과 바꿔버렸네요
어떤 시인은 시 한 편으로 문학상을 받고
어떤 시인은 꽤 많은 원고료를 받았다는데
나는 시 써서 벌기는커녕
어림잡아 오만 원 이상을 날려버렸네요
태워버린 것은 빨래뿐만이 아니라
빨래 삶는 대야까지 새까맣게 태워 버려
그걸 닦을 생각에 머릿속이 더 새까맣게 타네요
원고료는 잡지구독으로 대체되는
시인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시의 경제는 언제나 마이너스
오늘은 빨래를 태워버렸지만
다음엔 무얼 태워버릴지 속은 속대로 타는데요
혹시 이 시 수록해주고 원고료 대신
남편 속옷 세 벌과 수건 다섯 장 보내줄
착한 사마리언 어디 없나요
- 시집 『마지막 출근』 (문학의전당, 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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