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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참 좋은-

이사,악양 / 박남준

 

 

 

 

 

 

 

 

 

 

 

 

 

 

 

 

 

 

 

 

 

   결국 남쪽 악양 방면으로 길을 꺾었다

   하루 종일 해가 들었다

   밥을 짓고 국 끓이며

   어쩌다 생선 한 토막의 비린내를 구웠으나

   밥상머리 맞은 편

   내 뼈를 발라 살점 얹어 줄 사람의

   늘 비어 있던 자리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따금 아직도 낯선 아랫마을 밤 개가 컹컹거리며

   그 부재의 이유를 묻기도 했다

   별들과 산마을의 불빛들은

   결코 나뉠 수 없는 우주의 경계로 인해

   밤마다 한 몸이 되고는 했다, 부럽기도 했다

   해가 바뀔수록 검던 머리 더욱 희끗거리고

   희끗거리며 날리는 눈발을 봐도 점점 무심해졌다

   겨울바람이 처마 끝을 풀썩 뒤흔들다 간다

   아침이 드는 창을 비워 두는 것은 옛 버릇이나

   무덤을 앞둔 여우들이 그러했듯이

   나 또한 북쪽 그리운 창을 향해 머리를 눕히고

   길고 먼 꿈길을 청한다

 

                          - 적막, 창비 200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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