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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참 좋은-

도깨비 기둥 / 이정록

 

 

 

 

 

 

 

 

 

 

 

 

 

 

 

 

   당신을 만나기 전엔,

   강물과 강물이 만나는 두물머리나 두내받이,

   그 물굽이쯤이 사랑인 줄 알았어요

   피가 쏠린다는 말,

   배냇니에 씹히는 세상 어미들의

   젖꼭지쯤으로만 알았어요

   바람이 든다는 말, 장다리꽃대로 빠져나간 무의

   숭숭한 가슴 정도로만 알았어요

   당신을 만난 뒤에야, 겨울밤

   강줄기 하나가 쩡쩡 언 발을 떼어내며 달려오다가,

   또 다른 강물의 얼음 진군과 맞닥뜨릴 때!

   그 자리, 그 상앗빛, 그 솟구침, 그 얼음 울음,

   그 빠개짐을 알게 되었지요

   당신을 만나기 전엔,

   얼어붙는다는 말이 뒷골목이나

   군인들의 말인 줄만 알았지요

   불기둥만이 사랑인 줄 알았지요

   마지막 숨통을 맞대고 강물 깊이 쇄빙선을 처박은 자리,

   흰 뼈울음이 얼음기둥으로 솟구쳤지요

   당신을 만난 뒤에야,

   그게 바로 도깨비기둥이란 걸 알았지요. 열 길 물속보다

   깊은 한 길 마음만이 주춧돌을 놓을 수 있다는 것을

   강물은 흐르는 게 아니라 쏠리는 것임을 알았지요,

   다 얼어버렸다는 것은

   함께 가겠다는 것.

   금강(金剛)기둥으로 지은 울음 한 채, 하늘 주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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