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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참 좋은-

틈 / 김필영

 

 

 

 

 

 

 

 

 

 

 

 

 

 

 

 


   생명이 움트는 문이다

   위란강(圍卵腔)에 이르러 수정될 때 비로소

   한 생명이 수태되는 곳, 허공에도 틈이 있다

   봄비가 내리는 것은 아기구름이 사립문틈사이로

   마실 나오는 것이다. 아장거리는 발자국소리에

   미소 짓는 하늘이 틈을 내어주는 것,

   새싹의 겨드랑이 틈까지 부드럽게 젖을 때

   초목들의 겨울은 틈과 틈 사이에서 기지개를 켠다

   공중의 틈을 헤집고 꽃망울 틈으로

   봄이 왔음을 단 한번 알려서

   어찌 꽃들이 피어날 수 있으랴

   틈에도 빗장이 있다면

   당신이 내게 오는 틈의 빗장은 빼내버리고 싶다

   유리잔에 담긴 미나리 한 묶음, 잘린 발목 틈에서

   여린 싹들이 목을 내밀고 올려다본다

   작고 여린 틈이 나를 먹여 살린다

   꿈틀거리는 곳마다 생명의 문이 다소곳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