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찻길 보이는 송정역 앞에 가면
시장 기름집이 있지요
허물어지는 몸뚱이에 낡은 문신처럼
기름짭니다, 고치가리빳습니다,
라고 쓰인 출입문엔
몇 해째 싸구려 버틴 자물쇠 걸려있는데요
피대 감고 돌아가던 기계소리도 멈추고
흥건히 침 괴어내던 꼬신 기름 냄새도 사라졌지만
여전히 기름집이지요
세월이 갉아먹은 슬레이트 지붕엔
다른 생의 씨앗이 떨어져
실낱 같은 풀들이 자라기도 하고
비둘기호 사라진 기찻길엔
푸른 바다열차가 지나기도 하지만
제 이름 걸고 미동 없이 서있는 그를 잊어버리는 건
너무 미안한 일이지요
사는 내내 버팅기는 옹색한 날이었을지라도
길고 깊은 한 음역의 소릴 가만히 불어내는
오래된 관악기 같기도 하여서
가끔 사는 것이 바래고 얇아졌다 생각되는 날
기름집 앞을 서성대곤 하는데요
누군가 비밀번호를 꾹꾹 눌러 문 열어주길
기다려보곤 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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