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부터 더듬이가 긴 건 아니었어요
내놓을 것 하나 없는 몸뚱아리 지탱하려고
허방다리 짚다 수없이 넘어지고
꼿꼿한 기둥 하나 걸리기만 해라
아침마다 되뇌이다 길가에 서 있는
당신을 처음 만났지요
당신은 걸어서 오라고 했지만
나는 기어서 갔지요
한 발 한 발 허공에 늘인 줄을 따라
집 한 채 들이고 세간을 풀었지요
행간에 창을 내고 한 땀 한 땀 문패를 새겼지요
새벽이면 피멍든 이슬 창 아래로 쏟아 내며
내민 촉수 당신의 허리를 친친 감았지요
몸을 뒤틀어야 피어나는 꽃
나중에 알았지요
당신에게 나를 묶는 일이 한나절이면 지고 마는
보라색 교태를 흘리는 일이란 걸
'좋은, 참 좋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통화 / 김명인 (0) | 2023.06.06 |
---|---|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 / 정호승 (0) | 2023.06.06 |
남자도 가끔은 / 신현림 (0) | 2023.06.06 |
당신을 기다린 몇천년의 인연 / 장지태 (0) | 2023.06.06 |
혜민스님 (0) | 2023.06.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