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은 가끔 부엌에 세워둔
오래된 냉장고 속에 들어 갔다가 나온다
오랜만에 쇠고기를 사들고
어머니를 뵈러 갔다가 어머니가 안 계셔서
이리저리 집안 구석을 살펴보다가
어머니가 슬며시 겸연쩍게 웃으시면서
냉장고 문을 주름 깊게 열고 나오시는 것을 보았다
어머니도 나처럼 한 덩이 찬밥이 되신 것일까
나는 어머니가 처녀시절에 캔 냉이나
옷고름 풀던 첫날밤의 달빛을 냉장고 깊숙이
넣어 두셨나 싶었으나 그게 아니었다
나중에 영안실에 있는 냉동실에 들어가면
너무 추울까봐
너무 추워서 견디지 못하고 울어버릴까 봐
미리 연습하고 계신다고 천천히
입술 없는 입으로 말없이 말씀하셨다
노인들의 냉장고를 보면 꼭 실패한 인생 같다
인생은 물건이 아니나 낡고 텅 빈 노인들의
냉장고를 보면 인생의 모습이
꼭 저와 같다 싶어 나도 가끔 어머니를 따라
냉장고 속을 들어 갔다가 나온다
더 이상 데울 수 없는 나의 찬밥을
스스로 다시 데울 수 있는 새벽이 오기를
기다리며 어머니가 담그신 시어 빠진
김장김치와 몇 점 시금치 무침 곁에
말없이 있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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