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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참 좋은-

황태에 관하여 / 서안나

 

 

 

 

 

 

 

 

 

 

 

 

 

 

 

 

 

 

  내 죄가 있다면 지상에서의 삶을 꿈꾼 것이다

  퍼덕이며 육지의 힘에 닿고 싶었다

  험준한 산령을 거슬러 올라

  싱싱한 산 하나 알처럼 낳고 싶었다

  진부령 덕장에는 하루 종일

  눈과 바람과 얼음꽃의 고요함이 가득 차 있다

  소금기가 흐려지는 내 혈관에서

  두고 온 얼굴들이 조금씩 흘러나간다

  나는 얼마나 그대들을 욕망했던가

  움켜쥐었던 기억들을 하나씩 놓아버릴 때

  슬픈 수식어들이 지워지고

  백지처럼 넓어지며 나는 비워진다

  산의 손길로 정결하게 요약되는 나의 생

  불필요한 정신들은 절름거리며 내게서 다 떠났다

  눈이 내리고 또 바람이 분다

  죽음이 다시 찾아온다

  나는 온몸이 크고 단단한 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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