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그루터기로 보아 베어내기 아까웠던
한때 참 자랐던 나무인 걸
한눈에 알아봤어요
한아름도 넘는 밑동이 곧게 자랐을 거란
믿음 같은 거
누군가 그 나무 베어낼 때
몹시도 슬퍼했던 흔적 같은 거
단번에 베어내지 못하고
몇 번이고 쉬어간 톱자국이 그걸 말하고 있어요
제 몸에서 걸어 나온 나무의 아픈 흔적 같은 거
어쩌면 누군가도 그 나무속으로
저와 같은 흔적 남기며 걸어 들어갔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그루터기나무의 가족으로 보이는
작은 나무들의 나무가지가 찢겨 있어요
쓰러지는 그루터기나무 받아 안고
내어주지 않으려다 찢어진 마음들 같은 거
작은 나무기둥 사이로 큰 슬픔이
빠져나간 듯 길이 나 있구요
하늘도 누수하듯 거길 들여다보고 있어요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허공에다 파놓았던
그 나무의 푸른 웅덩이 사라진 뒤
환한 햇빛의 웅덩이가 새로 생겨나 있는 거예요
아무래도 그루터기나무는
어데 멀리 간 것이 아니라
숲이 내준 환한 슬픔의 자리에
앉아 있는 듯해요
나도 이렇게 그루터기나무와
함께 앉아보는 슬픔으로요.
'좋은, 참 좋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괜찮아,란 말 / 박라연 (0) | 2024.01.11 |
---|---|
겨울의사랑 / 최지인 (0) | 2024.01.11 |
잊지 말아라 / 나태주 (0) | 2024.01.11 |
우리, 모여서 만두 빚을까요? / 유병록 (0) | 2024.01.11 |
도루묵 구이 / 김창균 (0) | 2024.0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