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워를 하다 아래를 쳐다보며 혼자 말한다
에휴, 이놈,
저 시커멓고 물컹한 것이
나의 생명이고 죽음이라니
저 밑바닥에서 가슴을 지나
차가운 머리까지 뚫고 올라와
수시로 조용한 창문을 흔들어대고
돛대를 찢고 바람을 불러내고
애인을 울리고 사과를 터뜨리는
침상에서 아침마다 내 정신을 어지럽히는
에휴, 이놈,
나는 사타구니에
검은 자유를 달고 다니는 짐승이다
경전經典을 뒤흔드는 저 검은 구름에
그동안 나는 압사당하였다
죽을 때까지 그럴 것이다
저것은 한 마리 외로운 짐승, 붉은 심장
더러운 발톱, 무수한 배냇저고리의 탄생지
천사와 악령의 늪
저 시커먼 것이 오늘도 나를 몰고 다닌다
이리로 저리로 끌려다니며
경전을 찢었다 붙이는 동안
에휴, 이놈,
이놈도 지겹게 늙어갈 것이다
죽음이 자유를 죽인다
죽음이 자유를 만든다
- 『서정과 현실』(2020, 하반기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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