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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참 좋은-

절 / 이홍섭

 

 

 

 

 

 

 

 

 

 

 

 

 

 

 

 

   일평생 농사만 지으시다 돌아가신

   작은할아버지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절을 잘하셨다

   제삿날이 다가오면

   나는 무엇보다 작은할아버지께서

   절하시는 모습이 기다려지곤 했는데

   ​그 작은 몸을 다소곳하게 오그리고

   온몸에 빈틈없이 정성을 다하는 자세란

   천하의 귀신들도 감동하지 않고는

   못 배길 모습이라

​   세상사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가만히 그 모습을 떠올리며

   두 손을 가지런히 하고, 발끝을 모아 보지만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모자라도 한참은 모자란 자세라

   제풀에 꺾여 부끄러워하기도 하지만

​   먼 훗날 내 자식이 또한 영글어

   제삿날 내 절하는 모습을 뒤에서 훔쳐볼 때

   그 모습 그대로 그리워지길

   그리워져서 천하의 귀신들도

   감동하지 않고는 못 배길 모습이라

   생각해 주길 내처 기대하며

   나는 또 두 손을 가지런히 하고

   가만히 발끝을 모아보는 것이다

 

          - ​시집 <숨결> 현대문학북스.2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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