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좋은, 참 좋은-

백일홍처럼 오래오래 / 이운진

 

 

 

 

 

 

 

 

 

 

 

 

 

 

 

 

 

 

 

  삼백 년 된 백일홍나무가 꽃을 피우는 일은 그저

  삼백 년 쯤 된 습관이겠거니 짐작했겠지만

  꽃을 만드느라 뒤채던 밤이 삼백 년이라면

  그 잠은 얼마나 곤할 것인가

  이를테면 지금도

  삼백 년 전 첫 꽃을 맺었을 때처럼

  혹은 방금 햇살을 베어 물고 날아와 앉은

  새의 발목처럼 착하지도 죄를 짓지도 못한 채

  당신이 내 등줄기를 짚어주던 그 밤처럼

  놓지 못한 바람이 보인다면

  삼백 년 째 백일 동안

  꽃은 얼마나 두근거렸을 것인가

  나는 그 꽃 아래서

  겨우 서른 몇 날의 그리움을 걱정하였으니

  백일홍나무의 몸속에 잠든

  삼백 년 된 별을 어찌 알아볼 수 있겠는가

  무슨 힘으로 마음을 피우고 지우며 또 피우겠는가

  백일홍처럼 오래오래

 

 

 

 

'좋은, 참 좋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망초 안부 / 정선희  (0) 2024.02.28
아버지의 잠 / 문태준  (0) 2024.02.28
바다 보아라 / 천양희  (0) 2024.02.27
뚜껑론 / 정영애  (0) 2024.02.27
저녁에게 / 김형로  (0) 2024.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