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번호를 지우지 못합니다
너무 일찍 잊는 것 같아서요
쓸쓸한 뒷모습만 보았을 뿐
하고 싶은 말이 남았는데
더 이상 기회가 없다는 게 믿기지 않아
통화버튼을 누르다 황급히
종료버튼으로 바꿉니다
삶은 죽음과 통화할 수 없다는 음성 메시지가
서늘히 떠올라서 세상에 없는 사람이
반갑게 전화를 받으면 어쩌나 싶어서
전화기만 만지작거립니다
문득 고개를 드니
무심히 봄을 물어놓고 가는 겨울새 한 마리
목련나무 솜털에 쌓인 하얀 웃음 한 송이
가슴에 담아두기에도, 잊어버리기에도
애매한 시간이 지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