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타사 요사채에
우중충한 사람 여럿 모여있었는데요
저마다 수만 가지 생각들을 품고
수만 가지 알력을 겨루며 앉아있었는데요
마당 가 한 그루 목련 나무에서
봉긋한 꽃송이 하나가
공양주 보살 손에 살랑살랑 따라와서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맑은 차 주전자 속으로 살폿 들어갔다 이겁니다
아이쿠, 저 여린 꽃잎 다 짓무르겠다
말할 틈도 주지 않고
그 꽃송이 스르르 저를 다 열어젖히고는
달짝지근 젖 내음 뿜어내는데
아 글쎄, 그 순간 방안 가득 뻗쳐있던
그 수만 가지 알력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
꼭 목련꽃 피는 소리로 들려
사람들 뱃속에 찰랑찰랑 꽃 피고, 마당 가득 꽃 피고
물결, 꽃물결 골목 밖으로 찰랑찰랑 넘쳐서는
세상도 덩달아 봄이 됩디다
피어남도 좋지만 순절도 참 괜찮다 싶데요
- 시집 『차경借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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