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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참 좋은-

탱자꽃을 보다 / 김승해

 

 

 

 

 

 

 

 

 

 

 

 

 

 

 

 

 

  삼동 바람 끝에 날만 세우던
  탱자나무 묵은 울타리에 꽃핀다
  맨 팔뚝에 소름 돋듯 탱자꽃 피면
  일찍 늙은 몸에 새로 애 밴 일처럼 남사스러워
  산기 도는 울타리 봄젖내가 흥건하다

  꽃 피는 일이 살아서 다치는 일인 줄 알았을까
  상처마다 가시 돋는 일인 줄 알았을까
  도끼로 나비 잡듯 막무가내 봄빛 아래
  고요에 닿는 막다른 길을 밟고
  상처마다 탱자꽃 희게 핀다

  바짝 세운 가시에도
  꽃잎 한 장 안 다치는 봄,
  탱자꽃 피면
  누구의 기억인지 알 수 없는
  한 과거가 벌떡 일어나
  미처 못 떨군 뒤통수 동그란 열매 하나
  문둥이 문드러진 얼굴같이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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