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동 바람 끝에 날만 세우던
탱자나무 묵은 울타리에 꽃핀다
맨 팔뚝에 소름 돋듯 탱자꽃 피면
일찍 늙은 몸에 새로 애 밴 일처럼 남사스러워
산기 도는 울타리 봄젖내가 흥건하다
꽃 피는 일이 살아서 다치는 일인 줄 알았을까
상처마다 가시 돋는 일인 줄 알았을까
도끼로 나비 잡듯 막무가내 봄빛 아래
고요에 닿는 막다른 길을 밟고
상처마다 탱자꽃 희게 핀다
바짝 세운 가시에도
꽃잎 한 장 안 다치는 봄,
탱자꽃 피면
누구의 기억인지 알 수 없는
한 과거가 벌떡 일어나
미처 못 떨군 뒤통수 동그란 열매 하나
문둥이 문드러진 얼굴같이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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