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를 보면 괜히 신경질이 난다
그녀의 아버지의 아버지는 일제에 빼앗긴
조선땅이 싫어 살아도 더는 살 수 없는 조국이 싫어
흑룡강으로 떠났는데 그 여자는 할애비가 버린,
땅 설고 물 설은 모국의 귀퉁이에 와서
가난한 허벅지 하얗게 내놓고 온몸을 바쳐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 첨 만난 사내 품에 얼싸안겨'
곰팡내 물씬 풍기는 단란주점에서
올망졸망 두고온 식솔들 눈망울에 수평선을 담고
노래 부르는데, 씨발 왜 그리도 화가 나는지
휘청휘청 밖에 나와 해장으로 국수를 먹는데, 씨발
국물은 왜 그리도 뜨거운지
뒷골목에 쪼그리고 앉아 토악질을 하는데, 씨발
건더기는 안 나오고
왜 그리도 오장 쓴 물만 쏟아지는지
전봇대에 기대어 오줌 누는데, 씨발
왜 죄 없는 바지만 젖는지
- 『바람의 목례』(애지시선, 2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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