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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참 좋은-

메밀전병 / 전윤호

 

 

 

 

 

 

 

 

 

 



 

 

 

 

  강원도 정선 오일장에 가면

  함백산 주목처럼 비틀어진 할머니들이

  부침개를 파는 골목이 있지

  가소로운 세월이 번들거리는 불판에

  알량한 행운처럼 얇은 메밀 전을 부치고

  설움을 잘게 다진 묵은지로 전병을 만들지

  참 못생기고 퉁명스러운 서방이

  대낮에 이불 둘둘 말고 자빠진 모양

  한입 씹으면 시금털털한 사는 맛을 느끼지

  함석지붕을 때리는 빗소리 들으며

  옥수수막걸리를 마시던 친구들은 하나둘 사라지고

  뒤통수만 보여 주며 달아나던 처녀들도 간 곳 없는데

  이 땅의 하늘을 떠받친 태백산맥 아래

  아라리 흐르는 강 사이로

  메밀전병 부치는 할머니들은

  고소한 기름 냄새 풍기며 아직 그 자리에 있지

 

                           -시집『천사들의 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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