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물건들이 하나씩 사라진다
처음에 목걸이가 사라지고 그 다음엔 안경이 없어지더니
얼마 전에는 바지가 도망가 버렸다
가출이 아님에도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오른손과 왼손이 멀다
한 손은 감추고 한 손은 찾는다
나는 나를 감추고 물건을 감추고 중요한 약속을 감춘다
바지가 나를 감추고 있었으나 감춘 것이 드러나자
바지가 없어졌다. 나는 노출을 감추기 위해 나를 가둔다
평행하는 오른쪽 눈과 왼쪽 눈이 서로 멀다
한 눈은 찾고 한 눈은 기억을 잠근다
점점 멀어져가는 두 귀집 사이에 안경다리가 걸리지 않는다
하릴없는 안경이 잠적해 버렸다
분실물에서 오는 메시지가 귀집으로는 들어오지 않으므로
찾는 일이 더 난감해진다
분실물 찾는 일이 일상이 된 나는 막상 분실물을 만나면
헛보고 그냥 지나친다. 그렇게 헛보며
어린이가 지나가고 젊은이가 지나가고 지천명이 지나갔다
지나간 나는 나를 찾지 않는다
다가오는 나는 내일의 모습을 열어 보이지 않고
오늘의 미아인 나는 나에게 들키지 않는다
고리로 변신한 목걸이는
혹여 목 잃은 달이 두르고 있으려나
오늘밤 달무리 지고 내일은 비가 올라나
'좋은, 참 좋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람 부는 날이면 / 황인숙 (0) | 2024.07.12 |
---|---|
오살댁 일기3 / 유종화 (0) | 2024.07.12 |
겸상 / 권달웅 (0) | 2024.07.12 |
왜 사느냐고 묻거든 / 김순임 (0) | 2024.07.11 |
혀 / 권천학 (0) | 2024.07.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