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같이 논에 나간 아버지가 경운기와 넘어지셨다
평생 흙바닥만 기어 온 거북이 한 마리
읍내 병원 하얀 시트위에 납작 누워있다
통증을 참으려고 움켜쥔 거북등 같은 손
이 손은 잡아본 게 언제였던가,
기억이 없다
낯선 사람들과 친교를 위해 수 없이 나누었던 악수,
정작 아버지완 뜨겁게 잡아본 적 한 번 없었다니!
사장나무 아래 들독처럼 늘 덤덤하시던 분,
그 돌같이 굳은 손, 처음인 듯 마주 잡은 순간
손바닥의 혈맥을 타고 뜨겁게 전해오는
피의 온기가 울컥, 눈물의 둑을 허물고야 만다
모로 누운 아버지의 둥근 등 말없이 바라보다
거북이 등처럼 딱딱한 손등 찬찬히 어루만져 본다
무슨 경전처럼 무수한 갑골문(胛骨文)이 새겨져 있다
먹물깨나 먹고 수백 권의 책을 읽었다는 나도
쉬이 다 읽어낼 수 없는 그 생의 활자(活字)들이
젖은 내 손바닥 안에서 마구 꿈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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