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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참 좋은-

물집 / 장현숙

 

 

 

 

 

 

 

 

 

 

 

 

 

 

 

 

 

 

 

 

 

 

   김장을 하려고 무를 썰고 있는데
   칼 닿은 자리에 손가락이 아프다
   때론 오래 닿아 있으면 상처가 된다는 거
   그와 나 사이 닿아 있는 시간만큼 아픔도

   커진다는 걸 알았다 부딪힌 자리마다

   화끈거리다가 말갛게 부풀어 올랐다
   투명하여 속내가 다 보인다
   투명하다는 건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는 걸
   살면서 알게 되었다
   잘못 터뜨리면 흔적이 남아
   쉽게 다가가 터뜨릴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고집스레 버티고 있는 물집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있는 것 같다
   소독한 바늘로 말갛게 부풀어 오른 살갗을 터뜨렸다
   따뜻한 액체가 방울방울 떨어진다
   저 좁은 속에서 안으로 웅크리며
   집을 짓고 있느라 너도 고생이 많았겠다 싶었다
   노랗게 우러난 액체를 쏟아내듯 쿨럭쿨럭 밀어내고 있다
   흔적 없이 새살이 돋을 수 있을까
   아직은 바람 한 번 맞지 않은 분홍빛 살갗이
   어른어른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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