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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참 좋은-

철가방 형 / 유종인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 해도

   철가방 배달원은 든든한 나의 형,

   그들은 나보다 배고픔에 빠르다

 

   세상의 형이 되고 싶을 때 나는

   한 번 철가방을 들리라

   어머니 당신께는 제상에 못 올리던

   복숭아를 데려가고 아버지 당신께도

   수육 한 접시와 두꺼비 소주도 넣어가리라

 

   아,

   후끈한 스쿠터 휘발유 냄새를 마시며

   한낮의 사창 골목에서 클랙슨을 울리리라

   짜장면 짬뽕시키신 누나들!

   가슴골에 접힌 오동잎 그늘과 실없는 농담도

   나무젓가락처럼 벌려 주리라

 

   그대가 부르면

   진창을 지나 다리를 건너 들판 한가운데

   이렇게 홀로 선 꽃나무 그늘로

   신발 뒤축이 벗겨진 채 달려가리라

 

   면발 좋아하는 망자들도 몸을 내어 오시면

   아무려나 저승에도 한 그릇 외상을 주리라

   돌아올 땐 저무는 노을에 은빛 반짝이는

   철가방 북을 두드리리라

   터엉 비어가더라도 이것이

   진짜 그득한 생(生)이라고 믿으리라

   나는 세상에서 가장 가방끈이 짧은

   가방으로 떠돌리라

 

   날이 어둑해지고 눈발이 설레이는 날에

   창밖을 내다보는 철가방의 영혼,

   배달이 없는 날엔 짬뽕 국물에

   얼룩진 두보의 시집을 꺼내 읽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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