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에 찬서리가 내려 국화가 지기 전에
아버지는 문에 창호지를 새로 바르셨다
그런 날,
뜰 앞에 서서 꽃을 바라보는 아버지는
일 년 중 가장 흐뭇한 표정을 하고 계셨다
아버지는 그해의 가장 좋은 국화꽃을 따서
창호지와 함께 바르시곤 문을
양지바른 담벼락에 기대어놓으셨다
바람과 그늘이 잘 드나들어야 혀
잘 마른 창호지 문을 새로 단 방에서
잠을 자는 첫 밤에는 달그림자가 길어져서
대처에서 일하는 누이와 형이 몹시 그리웠다
바람이 찾아와서 문풍지를 살랑살랑 흔드는 밤이면
국화꽃이 창호지 안에서 그늘 째 피어나는 듯했다
꽃과 그늘과 바람이 숨을 쉬는
우리 집 방문에서 가을이 깊어 갔다
'좋은, 참 좋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머니라는 말 / 이대흠 (0) | 2024.09.25 |
---|---|
빨랫줄 / 서정춘 (0) | 2024.09.25 |
구절초 / 유안진 (0) | 2024.09.25 |
복어 / 이수종 (0) | 2024.09.25 |
해인식당 / 이승은 (0) | 2024.09.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