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밥 먹으려고 앉아 있을 때 내 몰골을 보면
돼지다
말을 하면 꿀꿀거리는 소리가 나고
자세를 바꾸면 팔다리가 뒤룩거리면서
돼지우리에 처박힌다
이 상태를 바로잡으려고 내 몰골을 보면 황소다
머리를 더듬으니 소뿔이 돋아나고
발을 만지작거리니 소걸음으로 걷게 되어
외양간에 들어간다
잠자려고 방바닥에 누워 있을 때
내 몰골을 다시 보면 천둥벌거숭이다
어른들이 잔반으로 키운 돼지를 팔아서
더 단 음식을 사 먹었고
어른들에게 전 재산이던 소를 팔아서
더 넓은 도시로 나왔다
이런 내가 부끄러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뒤척거리다가 일어나면
빈 돼지우리와 빈 외양간을 청소하던
그 어른들의 모습이 되어
한밤 내 나를 나무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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