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 아니라서 좋다
나는 내가 아무 것 아니라서
납작 엎드려 있을 수 있어 좋다
만약 기린의 무엇이 되었다면
긴 다리로 설렁설렁 삶을 건너뛰었을 테고
나를 낮추어 겸손과 친하지 않았을 테고
속 깊은 배려와 손잡지 않았을 게다
나는 내가 아무 것 아닌 게 좋다
뜬 소문처럼 이리저리 휩쓸리지 않아도 되고
속 보이게 얕은 머리 굴리지 않아도 되고
가자미 처럼 엎드려 세상에 없는 듯 있어도
누구 하나 뭐라 하지 않으니
눈치 볼 것 없는 무명(無名)이 이리 좋다
- 문영숙 시집 / 당신의 북쪽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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