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에서 화폐교환 창구를 맡고 있는 그녀는
하루에도 수억 수천만 원의 돈을 만지는데
돈은 사람들만큼 참 사연이 많다
시장 상인들이 500원짜리 동전 대신으로 쓴다고
반으로 쭉 찢은 천 원짜리 지폐
어르신들이 장판 밑에 숨겼다가 불에 타 버린 돈
남편 몰래 곗돈 탄 걸 전자레인지에 숨겼다가
작동시켜 타들어 간 돈
천장에 구멍 뚫고 숨겨 놨다가
쥐가 갉아먹은 만 원짜리
아웅다웅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사람들의 기록이
돈에 들어있다 천 원짜리 한 장에서 피어나는
웃음과 눈물을 생각하며 그녀는
매일매일 마음으로 외친다
“지친 돈들아 내게 와서 쉬어라”
그녀의 하루는 돈을 만지는 게 아니라
지치고 고달픈 인생살이를 만지는 것이다
- 시집 『왜 레몬이란 단어를 읽으면 침이 고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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