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한 봄 햇살을 등에 지고 담 너머로 우리 집을
힐끔힐끔 들여다 보던 숙이네 살구나무
꽃잎이 봄눈처럼 날아와 수면에 내려앉고
스무남은 마리, 갓 깨어난 햇병아리들 종종 결음으로
어미 닭과 한 줄로 빙 둘러서서 목을 축이던 곳
비 오는 여름밤엔 맹꽁이들이 모여 병약한
어린 누이 밤잠을 설치도록 떼창을 해대고,
핼쑥해진 제 모습을 둠벙거울에 기웃기웃, 비춰보던 낮달
저녁별 하나둘 나타나자 슬그머니 자리를 내주었지
그때부터 별들의 수다가 밤새 그칠 줄 몰랐던 곳
들에서 돌아온 할배가 흙 묻은 삽과 괭이를 씻고
여름엔 마당의 열기를 식히고
걸레를 빠는 허드렛물이었지
찾다 찾다 못 찾아 어린 누이를 애태웠던 꼬까신 한 짝
누이가 뒷산으로 떠나던 그 밤
슬그머니 수면 위로 띄워 올렸던 작은 둠벙
옛집 뒤란에서 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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