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을 만지다가 떨어뜨렸다.
깨진 계란은 온통 끈적거렸다.
정액과 여자 애액도 끈적거리고 사과즙 배즙도
근적끈적하다.
즙즙즙 하고 있으면 입술도 잘 안 떨어진다.
지구는 스스로 뱅뱅 돌고 있다 하고 태양을 빙빙
돌고도 있으니까 사는 동안 지상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점액질로 무장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때가 되면 떠나야 하는 법.
눈물이 끈적거리지 않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법.
세상을 적시기도 하는 눈물 속에선
한 평생을 끌고가던 끈끈한 정과 피도 녹고
끈적이던 기운들도 녹게 되어 있다.
그리하여 아무런 걸림 없이 눈물 속에
떠내려가게 되어 있다.
그대도 나도 멀리.
아주 멀리.
- 설태수 시집 『소리의 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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