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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참 좋은-

시절, 시절들 / 박이화

 

 

 

 

 

 

 

 

 

 

 

 

 



 

 

 

 

 

 

 

 

     풀밭만 보면 무작정 달려가

     얼굴을 묻던 시절이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젖배를 곯았고 그 후로 동냥젖에

     믿을 수 없지만 소젖도 먹고 염소젖도 먹고 컸다는

     후일담 때문인지 풀밭만 보면 젖 냄새 맡듯

     풀 냄새 맡던 시절이 있었다

     저물도록 뒤져도 찾을 수 없던 네 잎 크로버

     어쩌면 나는 네 잎 클로버보다 젖꼭지마냥

     말랑말랑한 토끼풀꽃을 더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조물조물 그 꽃을 만지며 애기똥풀 옆에서

     나도 모르게 단잠에 빠졌는지 모르겠다

     어느새 해는 지고 한 무더기 별빛이

     염소똥처럼 와르르 쏟아질 때까지

     그 너른 풀밭이 다 내 것이던 그 시절

     시절이란 말은 지금도 내겐 초록 풀밭 같아

     풀물처럼 지워지지 않는 새파란 얼룩이 있고

     토끼풀꽃보다 더 비릿한 날비린내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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