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밭만 보면 무작정 달려가
얼굴을 묻던 시절이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젖배를 곯았고 그 후로 동냥젖에
믿을 수 없지만 소젖도 먹고 염소젖도 먹고 컸다는
후일담 때문인지 풀밭만 보면 젖 냄새 맡듯
풀 냄새 맡던 시절이 있었다
저물도록 뒤져도 찾을 수 없던 네 잎 크로버
어쩌면 나는 네 잎 클로버보다 젖꼭지마냥
말랑말랑한 토끼풀꽃을 더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조물조물 그 꽃을 만지며 애기똥풀 옆에서
나도 모르게 단잠에 빠졌는지 모르겠다
어느새 해는 지고 한 무더기 별빛이
염소똥처럼 와르르 쏟아질 때까지
그 너른 풀밭이 다 내 것이던 그 시절
시절이란 말은 지금도 내겐 초록 풀밭 같아
풀물처럼 지워지지 않는 새파란 얼룩이 있고
토끼풀꽃보다 더 비릿한 날비린내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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