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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참 좋은-

먼 바다 / 배준석

 

 

 

 

 

 

 

 

 

 

 

 

 

 

 

 

 

 

 

 

 

 

 

 

  시골 초등학교 동창 한 놈이 시인이 된 줄 몰랐다

  안양 시내에서도 변두리 양지말 떡산 아래

  날카로운 칼끝으로 생선이나 저미며 산다기에

  콧물 찔찔 흘리던 촌놈이 무슨 회를 뜨냐며 웃었다

  우연히 그놈이 장사한다는 횟집을 지나다 들렀다

  긴 칼을 들고 여린 생선 속살을 회 뜨는 놈

  날선 칼날을 자유자재로 놀리는 놈

  자를 것 자르고 버릴 것 미련 없이 버리고

  이리 빠지고 저리 미끄러지는 푸른 바닷물을

  잡아채며 정갈하게 발라 놓고 씩 웃는 놈

  파도 소리 시원스레 한 점씩 맛보며

  그 정도면 됐다는 듯 소주 한 잔으로 간을 맞춘다

  나오다 보니 간판에 시 한 구절 크게 써있다

  먼 바다-

  이제 보니 이놈이 시인이구나

  시인이라고 떠들고 다니면 신통치 않다는데

  펜도 없이 칼날 하나로 시를 써대는 무서운 놈

  긴 말 필요 없는 한 접시 분량의 깔끔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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